월급 받기 위해 목숨 걸고 일한다?
일하는 사람의 건강 수준을 비교하는 여러 지표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활용되는 게 산업재해 발생 지표입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20년 기준 우리나라 근로자 10만 명당 치명적 산업재해1) 발생 수가 4.6명이라고 했어요. OECD 회원국 중 상위권을 차지했죠. 영국, 네덜란드, 스웨덴 등은 1.0명이 채 되지 않았고, 가까운 나라 일본과 비교해도 3배가 넘는 수치예요. 우리나라에선 소규모 및 하청업체에서 특히 산업재해가 자주 발생하는데요. 여기에서 일하는 이들 대부분은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상태, 위험한 작업 환경에 놓여있고, 노동권 보호 정책에서도 상당히 배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도권에서 포괄하지 못하는 이들의 노동을 '보이지 않는 노동'이라 표현하기도 하죠. 특히 여성, 청소년, 고령, 장애인, 이주민 노동자에게 건강 취약성 문제가 더 크게 나타납니다. 이들에 대한 관심이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일단 알아보자, 노동자 건강 실태
우리나라 노동권 보호 정책은 대기업·정규직 중심으로 발전되어 왔어요. 정책 실행의 용이성과 수용성, 관리 감독을 위한 행정력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죠. 남성·제조업·건설업 노동자를 중심으로 설계된 산업안전보건제도 역시 다양한 노동 형태와 작업 현장의 위험을 포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도적으로 배제된 사람들을 포괄하지 못한다면 노동자 건강불평등 문제는 계속될 수밖에 없어요. 또한, 최근 등장한 플랫폼 노동과 오랜 기간 법적 보호에서 배제된 특수고용노동자, 가사노동자 등 앞으로 노동 형태와 산업 현장의 변화가 계속될 텐데 정부가 선제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노동기본권 사각지대 문제는 커지겠죠. 세상의 변화에 비해 정책의 변화는 참 느리죠. 그래서 저는 우선 현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모니터링 체계가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노동자 건강불평등 모니터링 체계를 갖춘다면 그동안 우리 눈에 드러나지 않았던 취약 노동자의 건강 상태에 대한 자료가 쌓일 것이고, 이들의 문제를 활발히 논의하는 계기가 될 수 있어요.
아파도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노동자 건강불평등 문제 해결을 위해선 모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정부는 업무상 재해나 질병이 발생했을 때 충분한 회복 후 일터에 복귀할 수 있도록 산재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고, 고용시장 내 적정 임금 보장 및 합리적인 고용 계약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책을 설계해야 해요. 사업장에서도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작업장 환경 개선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산업재해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할 필요도 있고요. 노동자들도 나서야 합니다. 연구하면서 여러 산업 분야 종사자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공통으로 노조의 중요성을 강조하더군요. 정부가 다양한 산업 현장 이슈를 파악하긴 어려우니 노조를 통해 노동 현장의 문제를 드러내고 목소리를 내는 게 핵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이 10%를 넘지 못하고 노조를 적대시하는 정치적 분위기를 고려하면, 노조할 권리라는 아주 기본적인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이 씁쓸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사회적 분위기입니다. 아프면 쉬어야 하고, 아파도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