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동환입니다. 서울대학교 화학부에서 합성화학을 공부하고 있어요. 분자1)를 만들어 구조와 물성을 탐구하는 사람이죠.
저는 화학이 창작의 학문이라고 생각해요. 화학은 하나의 규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자연 현상을 다뤄요. 또, 살아있거나 살아있지 않거나 앞으로 살 일이 없는 모든 물질 세계를 살피는 분야죠. 우리 삶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새로운 물질을 만드는 학문이기 때문에 화학자를 창작자로 비유하고 싶네요.
2022 노벨 화학상도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어준 분들께 돌아갔어요. 사람들은 합성화학 분야가 이미 완성된 학문이라 생각했는데 수상자들은 합성화학 분야에 새로운 무언가가 또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죠.
이들은 인류에게 어떤 가능성을 던져 줬을까요? 2022 노벨 화학상 수상의 의미가 궁금하시다면 아래 90초 영상을 꾹 눌러주세요.
1) 분자: 원자가 결합해서 만들어지는 물질을 의미한다. 원자는 더이상 쪼갤 수 없는 가장 작은 단위다. 우리 몸은 100조 개 정도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세포 하나는 100조 개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2022년 10월, 배리 샤플리스 미국 스크립스연구소 교수, 모르텐 멜달 덴마크 코펜하겐대 교수, 캐럴린 버토지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를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선정했어요. 이들은 분자를 쉽고 빠르고 효율적으로 합칠 수 있는 '클릭화학(Click Chemistry)'과 '생체직교화학(Bioorthogonal Chemistry)'의 기초를 마련했죠. 단어가 너무 어렵죠? 쉽게 설명해 드릴게요.
You can click anything! (무엇이든 붙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차에 타면 뭐부터 하시나요? 안전벨트부터 메죠? 그때 나는 '딸깍' 소리를 빗대어 만든 단어가 클릭화학이에요. 영단어 'click'은 마우스를 누를 때 쓰이는 표현이지만, 사람과 사람이 서로 잘 통하는 관계를 표현할 때도 써요. 클릭화학에도 '잘 들어맞는다'라는 뜻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단어를 본 순간, 화학자들이 지루한 사람들이 아니라 정말 유머러스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하하. 클릭이라는 단어가 입에 착! 붙듯이 클릭화학으로 거의 모든 분자를 손쉽에 붙일 수 있어요. 세상 모든 걸 연결할 수 있죠. 그래서 화학자들은 "You can click anything!"이라고 평가합니다. 이게 어떤 의미가 있냐면요. 그동안 화학자들이 합성화학을 할 때 정말 어려운 과정을 거쳤는데 이제는 어려 단계를 거치지 않고도 복잡한 분자를 손쉽게 만들 수 있게 됐죠. 그동안 힘겹게 등산을 했다면, 클릭화학의 발견으로 별로 힘들이지 않고 산꼭대기에 오를 수 있게 된 것과 마찬가지랍니다.
너와 내가 만난 그 순간, 우리는 하나가 될 거란 걸 알았지 생체직교화학..? 한국어인데도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죠? 쉽게 말해서 '겹치지 않는다'는 개념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합성화학에선 결합하는 일뿐만 아니라 원하지 않는 곳에서는 반응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일이 중요해요. 우리 몸에서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복잡한 화학반응이 항상 일어나고 있어요. 이런 반응을 잘못 건드리면 큰 일이 나겠지요. 생체직교화학은 클릭화학 방식을 살아있는 것들에 활용하는 개념인데요. 다른 화학 반응과 중복되거나 경쟁하지 않으면서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마주할 수 있도록 해요. 마치 운명적인 사랑같지 않나요? 만나게 될 수밖에 없는 분자들의 운명이라뇨! 더 쉽게 택배를 예로 들 수도 있겠네요. 아주 복잡한 도시 안에서도 주소만 알면 물건이 그 장소에 정확하게 배달되는 개념이죠. 화학자들은 그동안 '완벽에 가까운 반응은 꿈이다'라고 했는데, 그 꿈이 이제 현실이 됐어요.
그래서 어디에 쓰이는거야? 클릭화학의 발견으로 인류의 건강 증진에 도움을 줄 수 있게 됐어요. 클릭화학으로 원하는 곳에 원하는 방식으로 결합을 만들 수 있다고 했잖아요. 100%의 확률로요! 덕분에 일반 세포에는 반응하지 않지만, 특정 암 세포만 정확히 찾아가는 항암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게 됐어요. 이처럼 클릭화학을 활용한 신약 개발 사례가 늘고 있어요. 실제로 미국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클릭화학 활용 약물이 10개 정도 있다고 하네요. 생물학과 의학뿐만 아니라 재료과학 분야에서도 그동안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방식의 '결합 만들기'가 이루어지고 있어요. 플라스틱과 같은 고분자 물질을 만들 때 여러 종류의 분자를 순서대로 정확히 연결하는 일에 클릭화학의 장점이 활용될 수 있게 됐죠.
2022 노벨 화학상 수상자 중 한 분인 샤플리스 교수는 사실 이번이두 번째 노벨 화학상 수상입니다. 2001년에도 수상하셨죠. 인생을 두 번 사는 분같아요. 노벨상을 받으면 기쁨에 취할 것 같은데, 무엇이 그로 하여금 계속 도전하게 만드는 걸까요? 호기심에 이끌려 늘 새로운 것을 찾는 샤플리스의 강연 제목을 언급하는 것을 끝으로 해설을 마치겠습니다.
"Searching for New Reactivity, 새로운 반응성을 찾아서"2)
2) 'Searching for New Reactivity'는 샤플리스의 2001년 노벨 화학상 강연 원고 제목입니다. 수상 강연 영상을 보면 후반부에 뜬금없이 클릭화학이 등장합니다. 당시엔 '비대칭 산화반응'이라는 주제로 상을 받았기에 클릭화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주제였습니다. 아마도 본인이 당시에 가장 매료된 주제였기 때문에 굳이 소개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마치 21년 뒤 두 번째 노벨상을 받을 것을 예견이나 한 듯 말이죠. 호기심에 이끌려 늘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성취에 안주하지 않는 소년 같은 과학자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인생을 두 번 산 사람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지난주 발송한 '아! 테스형 경건이 뭐야?'편에서 다룬 각주 내용이 사실과 달라 정정합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기존) <플라톤의 대화편>은 플라톤이 자신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와 나눈 대화를 정리한 책이다. ▶ (변경) <플라톤의 대화편>은 플라톤이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다른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