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과학원에서 양자정보과학 이론을 연구하고 있어요. 고등과학원은 한국의 이론 기초과학 육성을 위해 만들어진 정부출연연구기관입니다.
어릴 적 저는 물리학이 확실하고 분명한 진리를 찾아가는 도구라고 믿었어요. 하지만 삶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고등학교 다닐 때 이런저런 사회적 이슈로 자유의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어요. 그러다 우연히 '양자 불확정성 원리'에 대한 기사를 접하고 양자 물리학의 세계에 빠졌습니다.
확실하고 분명한 진리를 말하는 고전 물리학과 달리 같은 조건이어도 항상 다른 결과를 보여주는 양자 원리가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오늘자 뉴스레터는 참 특별합니다. 왜냐하면 글을 다 읽어도 여러분이 내용을 이해 못할 가능성이 99.9% 정도 되기 때문이죠. 허허.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도 이렇게 말했어요. "양자역학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인슈타인은 죽을 때까지 양자역학에 의문을 제기했고요. 지난 100년간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지속될 정도로 어려운 개념이니까 '나만 이해 못하는 건가?'라는 걱정 마세요. 영상을 보고 글을 읽으면 더욱 좋습니다.
1900년, 물리학자 막스 프랑크가 첫 양자 논문을 냈어요. 이걸로 1920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죠. 1920년대 후반에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가 불확정성 원리를 발표하며 양자물리학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시작됐고, 이것이 우리가 현재 알고있는 양자 물리학의 이론적 토대가 됩니다.양자역학 개념을 소개하기 전에 원자와 전자의 개념부터 알려 드릴게요. 원자는 더 이상 나눠질 수 없는 최소 단위예요. 너무 작아서 보이지도 않죠. 이 세상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어요. 우리 몸도 그렇습니다. 원자 가운데 있는 원자핵 주위에는 전자라는 친구가 계속 돌고 있어요. 전자도 너무 작아서 안 보입니다. 원자핵은 +(플러스)를 띠고 있는 양성자와 전하가 없는 중성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마이너스) 전하를 띠는 전자가 원자 주위를 뺑뺑 돌게 됩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만졌을 때 물체가 만져지는 이유는 모두 전자 때문이에요. 전자들이 전자기력으로 서로 밀어내기 때문에 가능한거죠. 물리학은 원자의 운동을 이해하는 학문이고, 양자역학은 전자의 움직임에 주목합니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할까? 안 할까?
물리학자들이 멘붕하는 일이 일어났어요. 원자를 돌고 있는 전자가 동시에 두 가지 상태에 놓여있었기 때문이죠.(중첩) 원자 주위를 도는 전자가 두 개의 궤도를 동시에 돌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다가 과학자들이 그 모습을 관찰하려고 하면 다시 한 개인척 해요.(붕괴한다) 한 개의 전자가 두 개 상태에 놓여있다는 흔적은 있는데, 실제로 관찰하면 또 한 개 상태에 있는 척을 해요. 미칠 노릇이겠죠? 아인슈타인 등 고전 물리학자들이 양자역학을 강하게 비판한 이유는 우리가 그동안 믿고있던 모든 규칙을 깨는 이론이었기 때문이에요. 고전 물리학자들은 무언가의 움직임을 거리, 시간, 속도로 규정합니다. 모든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기 때문에 미래는 완벽히 예측가능하다고 믿어왔죠. 그런데 확률론에 기반한 양자역학이라는 친구가 등장한 거예요. 주사위를 던져서 어떤 숫자가 나올지 모르듯, 어떤 사건이 일어날 지 예측 불가능한 개념이었죠.1)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물리학자들의 싸움, 누가 이겼을까?
양자역학을 둘러싼 논쟁은 양자얽힘 개념으로 또다시 촉발돼요. 양자얽힘은 하나가 정해지면 나머지는 동시에 정해진다는 개념이에요. 아주아주 멀리 떨어져있어도 가능하죠. 아인슈타인은 이 개념을 보고 너무 화가 났어요. 그래서 1935년에 보리스 포돌스키, 네이선 로젠과 함께 양자 이론의 허점을 지적하는 논문을 발표하죠. 세 사람의 이름 앞 글자를 따 EPR 논문이라는 별명도 붙었어요. 네 쪽짜리에 불과한 이들의 논문은 세상을 들썩이게 만들어요. 논문에선 상대성이론에 따라 어떤 것도 빛보다 빨리 이동할 수 없는데 하나가 정해지는 순간 멀리 떨어진 다른 하나도 동시에 결정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말하며 양자이론이 불완전하다고 하죠. 아인슈타인은 EPR 논란의 결말을 보지 못하고 1955년 고인이 됐어요. 그리고 1964년엔 존 스튜어트 벨이 한 논문을 발표하며 EPR 논란을 잠재울 방안을 제시하죠. 벨은 사실 아인슈타인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EPR 논문을 연구했고, 벨의 부등식을 발견해요. 그런데 역설적으로 아인슈타인에게 치명타를 입히게 되죠. 몇몇 학자들이 벨의 부등식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하면서 양자역학과 양자얽힘의 개념이 옳다는 걸 확인하게 됐거든요. 클라우저, 아스페, 차일링거가 그 주인공인데요, 이들은 2022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해 업적을 인정받았답니다.
실직해도 괜찮아, 몹시 궁금한 걸!
맞건 틀리건 양자역학 논란의 중심에 있던 모든 학자들이 박수를 받을만한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다들 본인들의 명성을 걸고 뛰어든 싸움이었기 때문이죠. 아인슈타인의 주장은 비록 사실이 아니었지만, 그처럼 집요하게 양자역학을 부정한 사람들 덕분에 양자컴퓨터, 양자암호 등과 같은 새로운 기술이 탄생했어요. 2022 노벨상을 받은 클라우저와 아스페는 실직의 위험까지 있었어요. 젊은 물리학자 아스페가 벨 부등식을 실험하겠다고 벨을 찾아갔을 때 벨은 정규직 교수가 아니면 이 바닥에서 일자리를 잃게 될 수 있으니 하지말라고 말릴 정도로 어려운 환경이었거든요. 20세기 우리 과학기술은 양자 물리학이 완전히 새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끈질기게 의문을 제기한 학자들의 열정이 모여 현대 양자정보과학의 기초를 닦을 수 있었죠. 비록 양자정보기술은 여전히 불확실성을 안고 있는데요. 과학기술의 발전에는 항상 불확실성과 위험 부담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 연구자 덕분에 더 좋은 사회가 만들어지는 거겠죠?
1)슈뢰딩거의 고양이: 양자역학의 불완전성을 비판하기 위해 슈뢰딩거라는 물리학자는 사고실험을 합니다. 상자 안에 고양이 한 마리가 있어요. 상자 안에 있는 독성물질이 든 병이 깨질 확률이 50%라면 1시간 뒤 고양이는 살아있을 확률과 죽을 확률이 각각 절반씩 있겠죠. 그런데 양자역학의 해석으로 보면 상자를 열어보기 전까진 고양이의 생사를 몰라요. 그래서 고양이가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죽어있는 상태라고 규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얼마자 복잡한 개념인지 스티븐 호킹같은 사람도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총을 꺼내고 싶었다"라고 표현했어요. 사실 슈뢰딩거 고양이 사고실험은 양자역학을 비판하려고 한 실험이었는데, 오히려 양자역학을 쉽게 설명할 수 있게 되는 바람에 슈뢰딩거는 난처해졌다고 해요. 그는 "내가 이런 일에 일조했다는 게 유감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